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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륵이 밝혀줄 불로장생 이야기. ] 5. 덧글 0 | 조회 667 | 2021-09-19 22:23:54
관리자  

<< '미륵' 이 밝혀줄 '불로장생' 이야기 >> - 발행처 : 대진미디어 - 2005년.

 

- '우리민족 고유신앙' 과 '병행' 하면서 정착한 '불교'. (page 116)

 

- 우리나라 전국, 어느 사찰을 가더라도,

  '불교가 본연의 불사를 드리는 본당'

  '우리나라 고유의 토착신'을 모시는 

  '칠성각, 산신각, 독성각, 용왕각, 명부전, 시왕전 등'을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래되는 과정에서

  '우리 고유의 토착신앙'과 접합되고 융화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는것이다.

   고대로부터 우리민족은

  산에 사는 사람들은 '산신' 께 빌고,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용왕님' 께 빌었다.

  일반 민가에서도 역시

  '하늘의 일원성신'께 기도드리는 등의 '토착신앙'을 널리 행했고,

  이것은 국가적 의식으로까지 정착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삼국시대' 이후 '불교'가 전래되면서

  이러한 '토착신앙'은 점차 '불교'에 흡수되어갔고,

  오늘날에는

  '이러한 것'이 '우리민족 고유의 신앙이었다'는 '사실' 조차 잊어버리게 되었던 것이다.

  (page 116)

 

- '전래된 불교'는

  오랜 시간동안 '우리고유의 토착신앙'과 함께하면서 정착하였고

  '그 이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토착신앙'이 생활속에 자리잡아

  '천지신명을 섬기고 조상숭배를 신앙'을 가졌던 '일반 백성들'에게

  외래신앙인 불교가 전래되자,

  '본래 신앙하고 있던 그 토착신앙' 과 '불교신앙' 사이에는

  '필연적인 갈등'이 빚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특히, '신라'에서는 그 정도가 더욱 심했는데

  '고구려백제' 가 지배계층에서부터 쉽게 불교를 수용한 반면,

  '신라' 는 지배계층이

  '전래의 천지신명을 모신 신궁' 을 설치하여

  그 사상을 통일하고 나아가

  이것을 국가 지배이념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인것이다.

  (page 117) 

 

- '고려''불교' 를 '국교' 로 정하였으나

  그것을 신봉하는 계층은 주로 '왕실과 귀족들'에 머물러 있었고,

  '대부분의 서민들' 사이에는

  '우리의 고유신앙'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불교가 고려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

  당시의 민중들에게 대단한 영향을 끼치고 있던

  '토착신' 을 끌어안을 필요가 있었고,

  % 그래서, 사찰의 뒤편에

  % '산신각' 이나 '칠성각, 독성각' 을 짓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그 당시에는 고유의 토착신을 신앙대상으로 모실만한

  '제대로 된 전각'이 었는데

  % '일반백성들'에게

  % '절 '에 세워둔 '산신각이나 칠성각, 독성각'에 기도 할수 있도록

  % '절' 에 드나들게 하면서 '점차 불교를 인지시키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 세월이 지나면서부터

  '우리의 고유신앙'은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심지어, 오늘날에는

  '칠성각 이나 산신각, 독성각, 명부전 등'이

  '당연히 불교속에 있는것이고 사찰에 있어야 되는것'으로 '착각' 하게 된것이다.

  (page 120)

 

- %%% '삼성각'

  %%% '칠성을 모신 칠성각, 산신령을 모신 산신각, 나반존자를 모신 독성각' 을

  %%% '총칭' 하는 말이고

  원래 '절'에는 '삼성각'이 없었으며,

  최근에 와서는

  '셋을 한곳으로 모아 합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는것이다.

  한편,

  %%% '삼성각' 은 '불교 이외의 신앙대상'을 모셨으므로,

  %%% 건물이름을 '전' 이라 하지 '각' 이라 하였던 것이다. (page 121)

 

- 우리나라에서는 옛부터

  '칠성' 에게 가족 건강과 장수 등등

  여러 가지 소원을 기원하는 신앙이 있었는데,

  대개 '칠성단' 은 '뒤뜰의 장독대'에 위치하였으며,

  '그 제사날'은 일정치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제사를 드릴 때도

  특별한 제물 없이 '정화수(:우물정, 빛날화, 물수)' 를 떠놓고 비는 형식이었는데

  이러한 민간의 '칠성신앙''불교' 에 흡수되면서

  '칠성각' 이 생겨나게 된것이다. (page 122)

 

- 원래, '도교' 에서는

  '북두 제4성 천권성' 에 '문곡성군' 이 위치하였으나,

  '미륵불의 공사' 로 인하여

  자리가 바뀌어

  % 현재는

  % '북두 제2성 천선성' 에 '문곡성군' 이 위치한다. (page124)

 

- '삼성각의 삼성' 중에 '인간신'

  '독성각'에 모셔진 '나반존자' 인 것이다.

  '독성' 이라는 것은

  % " '인연의 이치'를 '홀로' 깨닫고 '성인'이 되어

  %   '말세를 당한 중생' 에게 '복' 을 내리는 존재 " 로서

  신앙되었던 것이다.

  '독성'

  % '스승 혼자 깨달음을 얻은 성자' 를 일컫는 말로,

  % '우리나라' 에서는 '나반존자' 라고 하는데,

  '존자'

  '성자 와 같은 말'로서 '덕있는 이'를 공경하는 칭호이다.

  % 이 나반존자에 대해서는 '확실한 근거'가 다.

  다만,

  " 부처의 제자로 아라한과를 얻은 뒤,

    부처의 수기를 받고 남인도 천태산에 들어가 말세가 되면,

    중생의 복덕을 위해 세상에 나타나는 것 " 으로 알려져 있다.

  '현세의 이익을 주는 성인' 으로서 신앙되었으나,

  % '다른 나라' 에서는 그 유래가 다.

  또한,

  '나반존자를 모신 전각' 역시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형태인데

  이러한 점을 들어 '최남선'

  '나반존자에 대한 신앙' 은,

  '불교것이 아닌 우리민족 고유신앙'으로서

  불교가 들어오면서 그속에 '흡수'된것으로 보고 있다. (page 128)

 

- '산속의 사찰'이 '민간신앙'을 흡수하기 위해

  '산신각' 을 짓고 '산신' 을 모셨듯이,

  '해변에 자리하고 있는 사찰들' 역시

  예로부터 민간에서 신앙되어왔던 '용왕신' 을 모신 '용왕각'

  사찰 내에 설치함으로써 '민간신앙'을 흡수하는 형태를 취하였다.

  그래서 '해안의 사찰'에는

  '산신각' 대신 '용왕각' 이 있거나,

  아니면 '산신각과 병행'하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page 130)

 

- %%% '불교' 는 그 특성상 '조상숭배'었다.

  그러한 연유로

  불교가 대중을 흡수하기 위해

  사찰내에 '조상숭배신앙'의 장소로 설치한것이,

  %%% 바로 '명부전' 이다.

  '명부전' 은 사람이 죽으면 저승에서 재판을 한다는

  '명부시왕' 을 모신 전각 으로서,

  '우리나라 사찰' 에 존재하는 '독특한 사찰신앙 형태' 이다. (page 133)

 

- '오늘날의 명부전' 은

  " '지장전''시왕전'쳐진 형태 " 로 되어 있으나.

  '조선초기' 까지는

  % '지장전''시왕전'각각 독립된 전각으로 분리되어 있었던 것이다. (page 135)

 

- '조선 초기' 에

  불교를 억압하고 유고를 숭상하는 '억불숭유정책' 속에서

  % '유교효 사상' 을 '불교' 가 받아들이면서,

     죽은자의 형벌 및 새로 태어날 세계를 결정하는 심판관인 '시왕'

  % 죽은자를 자비로써 인도하는 '지장보살''결합' 이 이루어질수 있었던 것이다.

  (page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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